건강한 삶/차 이야기

보이차

꽃밭에서공주할멈 2012. 2. 21. 17:20

보이차전(普.洱.茶.石+專)                  



차(茶,Tea: Camellia Sinensis)의 본뜻은 첫째로 차나무에서 어린잎을 따서 만든 것을 말하며, 잘 손질된 찻잎, 차의 가루 덩이를 일반적으로 ‘마른 차’ 혹은 ‘찻감’이라고 구분해 부른다. 차나무는 ‘배태성종자식물(胚胎性種子植物)’로서 아시아 각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나무이며, 본래는 산에서 자라는 나무였으나 오래 전 부터 재배하여 온 나무이다. 차나무는 ‘피자성쌍자과(被子性雙子科)’로서 ‘상록성(常錄性)’의 나무이다.

인류가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어린 찻잎을 먹어보아 해가 없고, 특별한 효능이 있으므로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다가 저장법이 발달하여 기호음료로 쓰였을 것이므로, 음료 차의 유래는 농경사회의 식생활 문화와 더불어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정연선, 「한국문화」).

차(茶)는 중화민족의 첫 번째 가는 음료수이다. 당나라 육우(陸羽)가 쓴 「다경(茶經)」에는 [신농(神農)의 「식경(食經)」]에 “차를 오래 마시면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고 하였으므로 신농(紳農)황제 때인 B.C 2,737년경에 차가 기호음료로서 마시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신농은 중국 삼황(三皇)의 한 사람으로 백성들에게 농사를 짓는 법을 가르쳤고, 백 가지 풀을 맛보아 약초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성은 강(姜)씨로 불의 덕(德)으로써 임금이 된 까닭에 ‘염제(炎帝)’라고도 일컫는다.

중국의 전한(前漢)시대인 B.C 59년의 노비 매매문서인 ‘동약’에는 차를 달이고, 차를 산 내용이 있다. 그 후에 당, 송나라시기에 흥성하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이 흔히 하는 말에 이런 말이 있다.

“開門七件事, 柴米油鹽醬醋茶” 즉, 아침에 일어나 방문만 열면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일곱까지 물건이 있다. 앞의 여섯 가지는 모두 요리에 관계된 것이고, 마지막이 바로 차(茶)이다. 하루 세끼 식사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차(茶)를 꼽고 있음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흑차는 중국의 운남성(雲南省), 사천성(四川省), 광서성(廣西省) 등지에서 생산되는 후발효(後醱酵) 차로 찻잎이 흑갈색을 나타내고, 수색은 갈황색이나 갈홍색을 띈다. 흑차(黑茶)는 보이차, 천량차, 육안차, 호남 흑차 등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오래된 대엽종 차나무에서 잎을 채집하여 정통적인 보이차 제다 방법으로 만든 차가 ‘보이차전(普.洱.茶.石+專) 보이차’이고 찻잎을 벽돌모양으로 찍은 차로 간단하게 ‘전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1. 보이차(普洱茶= pu'er-tea : 중국식 발음 - 푸어차) 유래

보(普) ☞ ① 넓을 보 ② 클 보 ③ 두루 보 ④ 침침할 보
이(洱) = 水+耳 ☞ 물이름 "이"
차(茶) ☞ 차풀 다, 본음 - 차로 발음

금보다 더 비싼 명성을 가진 보이차(普洱茶: PUER TEA)는  2005년 베이징 자선 경매에서 좋은 보이차(병차)의 경우 7개를 '칠자병자'라고 부르는데 180만 위안(당시 한화기준으로 약 2억 2000만원)에 팔렸다. ‘같은 무게의 금값과 비교하면 60배가 넘는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20년을 넘는 7개짜리 한 세트는 가볍게 100만 위안을 쉽게 넘어가고 있다. 보이차의 경우에는 제조과정에서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고가품의 차가 된다. 그래서 대체로 20년 이상이면 최고품에 든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보이차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차, 즉 ‘오묘한 천지조화의 기운을 가진 차’라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벽한 건강을 가져다주는 차이기 때문이다. 좋은 보이차를 마시면 아랫배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면서 머릿골에서는 시원한 기운을 느끼게 된다. 건강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무해한 카페인을 소유한 완전 발효차로, 세계차품평대회에서 해마다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가장 건강에 좋은 차이기에 웰빙 보이차(중국식 발음 : 푸어차)라고 부르며, 전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명차로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다.

2. 보이차 제다방법과 역사

보이차(普洱茶: PUER TEA)는 차가 완전히 건조되기 전에 퇴적하여 곰팡이가 번식하도록 함으로써 곰팡이에 의해 자연히 후발효(後醱酵) 가 일어나도록 만든 차이다. 처음 마실 때는 곰팡이 냄새로 인해 약간 역겨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몇 번 마시다 보면 독특한 풍미와 부드러운 차 맛을 느낄 수 있다.

흑차 뿐만 아니라 모든 차 중에 대표적인 보이차는 주로 윈난성 일대의 대엽종 차엽을 후발효시켜 만든 차를 말한다. 그 가운데서도 보이차를 가장 많이 만드는 곳은 경치가 수려한 운남성(雲南省) 의 서쌍판납(西雙版納), 사모(思茅-시마오) 등지에서 생산되는 명차이고, 이 차를 만드는 민족은 주로 다이(태)족으로써 중국 소수 민족들이 애용하였던 차이다. 보이차는 한국식 발음이며, 중국음은 푸어차(普.水+耳.茶, pu'er-tea)이다.

운남성의 사람들은 몇 천 년 동안 차를 마셔왔으나 그 이름이 없다가 보이차(푸얼차 puer tea)라는 이름은 13세기 원(元 ; 1281-1367)나라 때 운남성에 보이부(步日部)라고 부르는 곳이 있었는데 후에 이지 방 말의 음을 따 중앙에서 한자로 변환하여 기록하면서 보이부(普耳部)로 표기 됐다. 그 때 중앙에서 운남성의 찻잎을 부르는 이름이 없었는데 보이부(普耳部)의 ‘보(普’자를 따서 ‘보차(普茶)’라고 불렀다.

이후 보이부가 점차적으로 운남성의 제일 중요한 찻잎 집산 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운남성 내의 야생 차나무의 찻잎으로 제조한 차의 제품은 모두 이곳을 통해 무역하였기 때문에 보이차(普耳茶)라 부르기 시작했다. 즉, 보이차를 중국 서부지역(티벳, 신강, 청해 등)으로 운반하기 위해 지나야 하는 길목이 바로 운남성 보이현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차마집시(茶馬集市)가 이루어 졌고, 차츰 이곳에서 거래되는 모든 차를 보이차라 부르게 되었고, 후에 17세기 명(明 ; 1368-1644)나라 말년에 이르러서 다시 ‘보이차(普耳茶)’로 바뀌어 현재까지 불리어지고 있다.

보이차(普洱茶: PUER TEA)는 명나라 말기에 이르러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청나라 옹정 10년(1729년)에 이르러 정식 황제에게 진상하는 공차로 선정되면서 200여 년간 중국 국내외에 높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보이차(普耳茶)는 할아버지가 만들어서 손자가 먹는 차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보이차는 장시간 후발효를 거쳐야 좋은 차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입창 청병은 홍콩으로 가져가 버섯을 제배할 정도로 엄밀하게 지어진 습도 높은 창고에서 오랫동안 숙성시켜 만들어 내는 차가 있는데 먹을 만한 차이다. 이때 저장 중의 차에서 습기로 인하여 곰팡이가 많이 생겨 변질 된 매변(買變)현상이 일어나는데, 매변 현상이 심한 것은 마실 수 없고, 약한 매변 현상은 오히려 차의 맛은 1~2잔까지 매미가 있고, 그 곰팡이 균이 비만과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에 좋다고 일본 잡지, 건강(健康) 85년도 12월호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광저우 흑모차의 경우 홍배라는 과정을 통해 미생물에 의한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고 있으며, 심지어 오래된 차처럼 보이기 위해 황산, 약염소수, 중금속 카바이트의 화학약품을 사용하기에 이런 차를 마시면 건강에 치명적이 될 수 있기에 반드시 구매할 때는 믿을 수 있는 정확한 경로를 통해 구하는 것이 좋다.

보이차의 고장인 중국 운남성에서는 이른바 차조(茶祖)로 제갈공명(諸葛孔明)을 받들고 있다. 유비(劉備)의 군사(軍師)로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펼쳐 삼국시대를 전개시킨 제갈공명은 촉(蜀)나라 남쪽에 위치한 운남에도 진출하여 오늘날의 보이차 나무를 심었다는 전설을 남기고 있다. 그가 남나산 근처까지 출병했을 때 사병들 사이에 눈병 환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이 때 치병(治病)의 비책(秘策)으로 공명은 갖고 있던 나무 지팡이를 남나산 중턱에 심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지팡이에서는 금세 잎이 돋아났고, 그것을 끓여 마신 사병들은 모두 완쾌됐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보이차 나무의 원조(元祖)라고 지칭된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건 오늘날의 보이차 가운데 최상품의 것은 남나산의 자연산 교목(喬木)에서 채취한 대엽종(大葉種)이라고 손꼽히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대엽종은 예사 크기의 것이 아니다. 손바닥 크기의 것으로 잎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고 일컬어질 정도다. 남나산에는 수령 몇 백 년이 넘는 노차수(老茶樹)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다왕수(茶王樹)로 지정된 나무도 바로 이곳에 있으니 상상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 다문화(茶文化)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금당(錦堂)선생은 일찍이 다왕수(茶王樹)를 찾아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이곳의 차나무는 비단 보이차의 원조일 뿐만 아니라 모든 차의 원조라고 주장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 귀한 대엽종(大葉種) 찻잎으로 제다한 보이차는 웰빙차의 진정한 시조가 된다.


■ 보이차 언제부터 마셨나? ■ 

중국차의 역사는 보이차의 역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보이차의 역사는 기원전 1,000년경 주(周)나라 때 중국 중원 남쪽 지방의 8개 작은 종족들로 구성된 파촉(巴蜀)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이들 중 일부 종족이 기원전 400년 춘추 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란에 시달려 남쪽으로 이동. 지금의 운남성, 귀주성, 호남성, 관서성 등 산중 오지로 집단 이주하였다. 이때 운남성으로 들어온 한인(漢人)들은 다시 여러 종족으로 갈라져 이들 소수 종족은 산 속에서 자기네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전통으로 모여 살게 되었다.

운남성은 차의 원산지로 야생 차나무가 세계적으로 제일 먼저 발견 된 곳이며, 현재에도 큰 야생 차나무들이 대량 보존되어 있는데도, 唐나라때 육우가 쓴 '다경(茶經)'에는 13개성(省) 42개주(州)의 명차를 소개하면서도 보이차(普耳茶)에 관한 내용이 없다.

그 이유는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여 중앙집권제를 펼치지만. 지리적으로 오지인 운남성은 중앙정권의 행정 통솔력 밖에 있었기 때문에 야만인들이 마시는 저급품 차라고 생각하여 관심이 없었다.

이미 당(唐)나라 때부터 있었던 보이차의 정식 이름에 관한 기록은 보일부(步日部)라는 지명의 음이 변해 보이부, 13세기(元 1281-1367)에 들어서 푸어차(普耳茶), 17세기(明1368-1644)에 푸얼현에서 모아 출하하였기 때문에 푸얼차(보이차, 普耳茶)로 불리게 되었다. 이 이름을 얻은 보이차는 티벳, 서장, 신강 등 육식을 위주로 하는 소수민족의 필수 식품이 되어 점차로 국내외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명(明) 태조 주원장이 단차(團茶)를 폐지하고, 산차(散茶)를 진흥 시켰지만 역시 오지인 이곳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위의 사진과 같은 단병차(團餠茶)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당송(唐宋) 이래 차마(茶馬)시장은 운남에서 시작하여 미얀마. 월남. 인도로 차의 길(茶馬大道)을 만든다. 청(靑)왕조에 이르러서는 교통의 발달로 중앙 정부가 운남성의 모든 행정력을 장악하게 되어, 국내외 뿐만 아니라, 공다(貢茶)로 인해 황실의 총애를 받는 최상품의 차로 인정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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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용방법은 ‘포차법(泡茶法)’ 다른 말로 ‘차호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송대(宋代)까지는 덩어리차를 갈아서 마시는 점차법(點茶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차의 약용적(藥用的)인 인식에 따른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차법(點茶法)’은 원대(元代)를 거치면서 거의 소멸되고, 명대(明代)에 이르면 ‘포차법(泡茶法)’이라고 하여 차잎을 그대로 넣고 우려 마시는 방식이 정착되었다. 이는 음료로서 기호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라고 하겠다. 즉 소금 등 인공적인 맛을 가미하거나 진한 맛을 즐기던 것에서 차 그대로의 맛을 즐기려는 경향이 높아진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보이차와 같이 개성있는 차 맛을 가지고 있는 차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이어졌고, 보이차는 운남과 토번(吐蕃)에서의 명성 그대로 자연스레 중국 내지에 알려졌던 것이다. 흑차 중 보이차의 맛과 향을 깊이 느끼려면 다관(茶罐)은 보온력이 강하고, 흡수성이 높은 자사호(紫砂壺)의 사용이 가장 좋다. 만약 자사호(紫砂壺)가 없다면 한국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다기(이 때는 가장 작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나 은다호나 자기, 유리, 금속 등 어떤 다호도 무난하다. 


1. 찻물온도는 98℃ 이상 끓인 물을 사용한다. 왜냐하면 보이차는 카테킨류 함량이 적기 때문에 탕호(다관에 물을 부은 온도)가 높을 수록(열탕) 차 맛이 좋기 때문이다.

2. 2~3g의 차잎을 자사(紫砂)다관에 넣고, 끓인 물을 충분히 붓는다. 이 때 바로 다해(茶海)에 부은 후 차배(茶杯: 찻잔)에 분배해야 한다.

3. 우선 첫번째 우린 찻물은 세차(洗茶)하고(침윤포라고도 한다.), 첫 탕은 바로 우리며, 차 우려 나오는 농도에 따라 약 30초에서 30초, 이후 3탕, 4탕은 매번 10초에서 15초 정도씩 점차 연장하면 된다. 그러나 만약 더욱 여러 번 깊은 차향을 유지하고 싶다면 더 빠른 시간으로 우려내어야 한다. 더욱 자세한 내용는 기본 다행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 세차란 뜨거운 물을 다관에 붓고 바로 쏟아 버리는 것을 말하며, 세차를 하는 것은 차를 제작하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혹시 먼지나 기타 이물질 등이 혼합된 것을 씻어 내기 위한 것과 차를 보관하는 과정에서 찻잎에 흡수한 습기나 냄새를 제거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4. 보이차는 카테킨류 함량이 적기 때문에 가능한 열탕을 부어서 우려야 제 맛이 납니다.


■ 기본 다행법 ■ 


1) 기본 다구를 준비한 후 팽주(차를 따르는 사람: 대부분 주인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가장 중앙에 위치한 다음 예를 갖추고 손님을 맞이한다. 

2) 인사(절)를 한 뒤 목례를 하고 차석으로 간다. 

3) 차석에 앉아서 손님에게 편하게 앉기를 권한다. 

4) 차통을 들어 차시(차칙)도 함께 잡고, 차를 다관에 넣는다. 차관(작은 차주전자)이나 도자기 컵에 차 잎을 기호에 맞게 양을 넣는다. 즉, 보이차를 적당하게 자사호(紫砂壺:다호)에 담는다. 이때 진호(震壺)를 하는 데 다호를 가볍게 두드려, 부서진 차잎을 가라않혀 다호 구멍이 막히는 것을 방지한다. 

5) 차호에 끊은 물이나 첫 찻물을 넣고, 다시 이 물을 차해(茶海) 에 차해에 따라내는 것은 차탕의 농도를 고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찻잔 순으로 다구를 데운다. 차를 우릴 때, 처음 차잎을 다호 속에서 살짝 우려서 찻물을 버린다. 물을 붓고 침윤포(浸潤泡)로 찻잔에 직접 붓는다. 즉, 우려낸 첫물은 잔을 예열(따뜻하게 하는 것) 한뒤 버린다. 

* 침윤포(浸潤泡)는 첫 번째 포다를 하기 전에, 차잎이 물에 충분히 적셔져 제 맛을 내기 위해 마시지 않고 버리는 준비 과정이다. 그 첫 이유는 차잎에 물이 어느 정도 스며들어야(찻물이 잘 우러나오도록 하는 방법) 제 맛이 나기 시작하기에 첫 잔은 버린다. 둘째는 찻 잎의 먼지, 약 성분 등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 셋째는 찻잔을 데워야 차의 맛이 제대로 나기 때문이다.

6) 다관(차호)을 들어서 잔에 부어 잔을 데운 뒤(5번 참고), 차호 위에 물을 부어 차호를 적신다. 다시 차호(다관)에 차수(물)를 붓는다. 데워진 잔의 물을 퇴수기에 버리고, 차건으로 차호(다관)과 차배(찻잔)과 주변을 닦는다(차반이 있을 때는 딱지 않아도 무방). 

7) 차호(다호)에 차를 넣은 상태로 뜨거운 물(98도씨 이상)을 붓고 바로 차해(다해)에 찻물을 붓는다. 이때 차호(다호)에 물기가 없도록 차해에 따루며, 차호에 뜨거운 물을 부어야 찻물을 수십 번 이상 반복하여우려도 찻물이 나온다. 또한 차호(다관)에 있는 찻물을 최대한 쏟아내므로써 향과 맛이 좋은 다음 잔(찻물)을 기대할 수 있다. 즉, 차를 담은 차호(다관)에 물기가 없어야 찻물을 수십번 우릴 수 있다.

8) 차해의 물을 차배(찻잔)에 우측에서 좌측으로 찻물을 찻잔에 처음 1/2씩 따르고, 각 잔에 3/4정도 씩 나눠 따른다.(70~80%) 찻물을 모든 손님분들에게 따른 뒤 팽주가 차의 맛을 보면서 손님에게 권한다. 이 때 반드시 손님 들은 색, 향, 미(찻물 색깔을 보고, 차향을 맡고, 차의 맛을 혀에서 느낀 뒤)를 감상하며 차를 마신다. 

차를 흘러 넘칠 정도로 따르는 것은 실례이자,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도 여간 고단한 것이 아니다. 매우 뜨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말에 ‘천차만주(淺茶滿酒)’라 하여, 중국차는 얕게 따르고, 중국 술은 그득 따른다는 말이 있다.

대략 소개했지만 중국차 마시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처음이야 어렵지만 몇 번 마셔보면 이렇게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진다. 이 일련의 동작과 과정이 거의 끊어지지 않고 우아한 리듬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중국 처녀들이 중국차를 따르는 시범을 보이면 그것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느껴진다.

9) 손님은 차를 받을 때 찻잔 뒷 쪽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세번 두들기거나 찻잔 우측에 오른 손을 모아 수직으로 세운 뒤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차를 마신다. 잔을 받을 때마다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하며, 그리고 첫잔을 마신 뒤에는 반드시 차에 대한 품평(색, 향, 미)을 말하는 것이 차를 대접받는 사람의 예의이다.

10) 보이차를 어느 정도(최소한 30분 이상) 마신 뒤 장뇌 산삼차를 조금 넣거나 인삼 우롱차, 혹은 화차 등을 가미하여 마시면 좋다.

11) 차회에서 차를 마실 때는 반드시 덕담(좋은 말)만을 나누어야 한다. 차 마시는 자리는 언제나 정갈하고, 절제된 덕담(德談)이 있었다. 좋은 차는 차와 물의 양, 차를 우리는 시간, 우린 차를 따르는 정도가 조화로워야 한다. 이 세 가지를 ‘중정법(中正法)’이라 한다. 그 중에 물은 차 맛을 결정하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다도의 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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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구가 없을 때 ‘점차법(點茶法)’, 혹은 ‘자차법’)을 사용할 것. ■ 

음차(飮茶) 방식의 변화에 따른 영향이 보이차가 자연스럽게 알려지는데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주지하다시피 송대(宋代)까지는 덩어리차를 갈아서 마시는 점차법(點茶法)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차의 약용적(藥用的)인 인식에 따른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다구가 없다면 주전자나 솥에 보이차를 엄지 한마디 정도 떼어내 끓여서 마시면 된다. 이를 ‘점차법(點茶法)’이라고 하며, 혹은 ‘자차법’이라고 한다. 이미 보이차는 처음에 마실 때 시작된 방법이 ‘점차법(點茶法)’, 혹은 ‘자차법’)을 이용해 음다하였다. 다만 맛과 향을 깊이 느끼고, 차회를 통해 대화와 정감을 나누려고 하면 다구를 이용한??좋다. 

그러나 외부에 나간다든지, 사람이 아주 많을 경우는 이 “자차법”을 이용하면 차를 마시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찻물은 하루에 2리터 정도 마시면 좋은데 만약 끓인 찻물을 계속하여 마시고 싶다면 간편하게 보관하는 방법이병에 담아 반드시 냉장 보관하여야 변하지 않는다. 차를 달인지 하루 이상 지나면 변하기 때문이다. 마실 때는 찬것을 마시기 보다는 전자렌지에 1분 30초 정도 데워서 마셔야 약리효과가 강하게 형성된다.


상기 사진은 보이차의 대가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차를 즐길 때 마신다고 하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귀한 차이다. 따라서 모든 차가 꼭 같이 어떤 기준에만 한정하여 적용하는 것은 때로는 무리가 있다.

진짜 좋은 차는 맛과 향과 마신 후 몸의 상태와 개개인의 기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차를 대접받는 자리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차품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해 주어야 올바른 다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으며, 

혹시 마신 후 바로 몸에 이상 증세가 생기거나 역겨운 냄세가 나거나 자신의 컨디션에 부합할 때는 거절하거나 만약 나쁜 차라는 확신이 생길 때는 차회 중인 차에 대한 진지하게 서로 품평을 통하여 모두가 더 이상 이런 차를 마시지 않도록 절제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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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차 보관방법 ■ 

1. 보이차는 냉장 건조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완전 발효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조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해야 한다.

2.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 보이차를 잘 활용하여 마시고, 건강에 도움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원한다. 보이차에 대한 의문에 대한 개인적인 문의는 보산 황영복 박사(휴대폰 011-710-9182/ 710 행운을 열번 잡으려면, 9182 구입 빨리 하시오.)로 보이차에 대한 궁굼증 해결이나 자문을 받으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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